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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의 종묘배향의 의미   
작성자   관리자
집필자 :  kkskktkpahtw  (2005-06-20 17:31)

유교적 왕도정치를 추구하는 조선시대에는 국가와 왕실의 위기를 극복한 공신들 이외에 정치와 학문발전에 기여한 공로자들도 공신이라고 불렀다. 종묘배향공신과 문묘배향공신이 그들이다. 종묘배향공신은 왕과 함께 종묘에 모셔지는 공신들이었으며, 문묘배향공신은 유교의 교주 공자를 모신 성균관과 향교에 모셔지는 공신들이었따. 종묘배향공신과 문묘배향공신으 제도는 고려 이래로 시행되었는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더욱 발전했다.


종묘배향공신과 문묘배향공신은 조선시대 정치와 학문을 대표하는 공신들이었다. 종묘배향공신은 국왕을 가장 잘 보필하여 왕도 정치를 구현하게 한 공로로 책복되는데, 이들은 당대를 대표하는 관료였다. 문묘배향공신은 조선사회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유학의 발전에 크나큰 공로를 세운 공로가 인정되는 학자들이었다. 정공신이나 원종공신이 위기상황에서 책봉되는 것에 비해, 종묘배향공신과 문묘배향공신은 평화시에 책봉된다는 점에서 달랐다.


종묘배향공신은 조선시대 관료들의 꿈과 같은 존재였다. 양반관료의 최대 이상인 왕도적치 구현에 기여했다는 평가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예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종묘배향공신을 배출한 가문은 최고의 가문으로 존중되었으면 그 후손들은 국가로부터 각종 특혜를 받았다.


종묘배향공신은 보통 국왕의 삼년상이 끝나고 그 왕의 신주를 종묘에 종안하기 보름이나 한 달 전쯤에 결정되었다. 배향 당사자는 선왕이 살아 있을 때 보좌하다가 이미 세상을 떠난 관료들이었다. 예컨데 조선의 건국시조 태조 이성계의 신주는 태종 10년(1410) 7월 26일에 종묘에 모셔졌는데, 태조의 배향공신인 이화, 조준, 이지란, 조인옥 등 4명은 약 보름 전인 7월 12일에 결정되었다. 태조 이성계의 핵심참모로서 조선건국에 절대적인 공훈을 세웠던 정도전은 태종이 일으켰던 제 1차 왕자의 난에서 역적으로 몰려 죽었으므로 거론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태종은 약 10년 후에 남은, 남재, 이제 등 3명을 태조의 배향공신으로 추가하게 하였다. 이유는 고려 태조 왕건의 배향공신이 배현경, 홍유, 복지겸, 신숭겸, 유금필, 최응 등 6명 이었으므로 이보다 더 많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 결과 고종 이전에느 국왕의 배향공신이 7명을 넘어가지 못했다.


실제 왕 노릇을 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추존된 왕이나 복위된 왕에게는 원래는 배향공신이 없었다. 예컨데 조선시대의 추존왕인 덕종, 원종, 진종, 장조, 문조, 그리고 복위된 단종 등이 그들이다. 그런데 고종 대에 장조와 문조에게도 배향공신을 정해서 올렸는데, 이는 왕실의 권위를 높이려던 흥선대원군이 강행한 것으로서 조선건국 이래의 전통은 아니었다. 흥선대원군은 추존왕의 배향공신 뿐만 아니라 수많은 종친과 관료들을 배향공신으로 선정하기도 하였다.


실제 왕 노릇을 했지만 축출된 왕, 예컨데 연산군이나 광해군은 당연히 배향공신이 없었다. 왜냐하면 연산군이나 광해군은 아예 종묘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래의 종묘배향공신은 살아생전 국왕으로 군림하다가 사후에 종묘에 모셔지는 왕에게만 해당하는 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망국의 왕인 고종과 순종에게도 배향공신은 있었다. 비록 일제시대이기는 하지만 고종이나 순종도 종묘에 모셔졌으며, 국왕으로 재위한사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종의 배향공신은 박규수, 신응조, 이돈우, 민영환 이렇게 4명 이었다.


순종도 고종과 마찬가지로 4명이 배향공신으로 선정되었다. 처음에 순종의 배향공신으로 추천된 사람은 9명이었다. 즉 일제시대에 이왕가를 관장하던 이왕직에서 추천한 배향공신 후보자는 이유원, 서당보, 송근수, 김병시, 정범조, 송병선, 이경직, 이완용, 서정순이었다. 이들을 대상으로 이왕직 장관 한창수, 후작 박영효, 자작 윤덕영, 남작 한규설 등 20명이 창덕궁에 모여 각자 추천하고 싶은 사람의 이름 아래에 동그라미를 쳤다. 그 결과 송근수, 김병시, 이경직, 서정순 4명이 배향공신으로 선정되었다. 매국노로 지탄받던 이완용은 동그라미 1개만을 받아서 탈락되었다. 이렇게 하여 태조부터 순종까지 조선시대 종묘배향공신으로 선발된 사람은 총 95명에 달했다.


배향공신으로 결정되면 별도의 신주를 봉상시라고 하는 관청에서 미리 제작했다. 다만 신주에는 해당자의 이름을 쓰지 않은 상태였다. 봉상시는 조선시대 제사 및 시호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던 부서였다. 국와의 삼년상 이후 왕의 신주를 종묘에 모실 시기가 가까워지면 봉상시는 제작했던 신주를 공신가의 사당에 보내 제사를 지냈다. 왜냐하면 배향공신으로 선정된 사람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으므로, 그의 후손이 사당에서 신주를 모시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향공신의 신주를 모시고 사당으로 갈 때는 의장을 갖추었다. 공신의 신주는 어깨에 메는 가마에 넣어서 가지고 갔는데, 국왕의 교서, 제사에 쓸 제문 및 이름이 써 있지 않은 신주 등도 행렬에 포함되었다.


공신의 사당에 도작하면 먼저 국왕의 교서를 먼저 읽었다. 이 교서는 배향공신으로 선정된 사실을 알리며 아울러 그의 공덕을 찬양하는 글로서 예문관에서 작성했다.


교서를 읽은 다음에는 가지고 온 신주에다 직함과 성명을 썼다. 교서를 읽거나 신주를 쓰는 것은 모두 봉상시의 관원과 함께 온 관리의 몫이었다. 이어서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제문을 읽은 후 직함과 성명을 쓴 배향신주를 모시고 돌아갔다. 배향신주는 국왕의 신주를 모시는 날까지 궁궐안의 적당한 곳에 모셔두었다. 그러다가 국왕의 신주가 종묘에 들어가는 날 배향신주를 종묘의 공신당에 모셨다.


종묘는 기본적으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는 정전과 그 앞의 좌우에 있는 공신당, 그리고 칠사당으로 이루어졌다. 정전은 살아생전의 국왕과 마찬가지로 북쪽에서 남쪽을 향했다. 이에 비해 공신당은 좌측 즉 왼쪽에 있으며, 칠사당은 우측 즉 오른쪽에 위치했다. 마치 왕의 좌웅에서 모시는 동반과 서반처럼 세상을 떠난 왕과 왕비의 혼령을 공신당과 칠사당의 영령들이 모시는 것이었다.


종묘배향공신은 자신이 보좌한 국왕의 신주가 종묘에서 나가면 같이 나가야 하는 운명이었다. 그것도 왕의 신주는 영녕전으로 갔지만, 배향공신의 신주는 후손에게 주어서 불태우도록 했다.


조선시대의 종묘제도는 제후의 체제에 입각한 5묘제, 즉 다섯 명의 왕만 모시는 제도였다. 즉 태조 이성계와 현왕의 직계 4대까지만 모시고 여기에서 벗어나는 왕의 신주는 영녕전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태조 이성계가 종묘를 건설했을 때에 5칸의 정전을 지은 것은 바로 다섯 왕을모시기 위한 5묘제의 종묘제도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종묘 정전 앞의 공신당에는 태조 이성계 및 현왕의 4대까지 다섯 왕의 배향공신만이 있을 수 있었다. 최초의 공신당이 3칸이었던 것은 그것만으로도 다섯 왕의 배향공신을 모시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묘에 모셔진 국왕이 불후의 공덕이 있을 경우에는 종묘에서 옮겨지지 않았다. 이런 국왕의 신주를 불천위라고 하였다. 종묘배향공신이 영원히 종묘에 머물려면 자신이 보좌한 국왕이 불천위가 되어야 가능했다. 즉 자신이 국왕을 잘 보좌하여 불후의 공덕을 이루도록 해야 하는 것이었다.


현재 종묘 정전은 19위의 왕을 모시는 19칸인데, 이는 최초의 5칸 봐 몇배나 늘어난 규모이다. 이는 5왕을 제외한 14위의 왕이 불천위가 된 결과였다. 따라서 19위의 왕을 모시는 배향공신도 늘어날 수 밖에 없었다. 이 결과 최초의 3칸이었던 공신당은 현재 16칸으로 늘어나 있다.


조선시대의 종묘배향공신 제도는 국왕을잘 보좌한 관료들을 위한 최고의 포상제도이며 동시에 국왕을 잘 보좌하게 하기 위한 최고의 동기부여 정책이기도 하였다.



태조 - 조준, 이화, 남재, 이제, 이지란, 남은, 조인옥

정종 - 익안대군 이방의

태종 - 하륜, 조영무, 정탁, 이천우, 이래

세종 - 황희, 최윤덕, 허조, 신개, 양녕대군 이제, 효령대군 이보

문종 - 하연

세조 - 권람, 한확, 한명회

예종 - 박원형

성종 - 신숙주, 정창손, 홍응

중종 - 박원종, 성희안, 유순정, 정광필

인종 - 홍언필, 김안국

명종 - 심연원, 이언적

선조 - 이준경, 이황, 이이

인조 - 이원익, 신흠, 김류, 이귀, 신경진, 이서, 능원대군 이보

효종 - 김상헌, 김집, 송시열, 인평대군 이준, 민정중, 민유중

현종 - 정태화, 김좌명, 김수항, 김만기

숙종 - 남구만, 박세채 ,윤지완,최석정, 김석주, 김만중

경종 - 이수, 민진후

영조 - 김창집, 최규서, 민진원, 조문명, 김재로

장조 - 이종성, 민백상

정조 - 김종수, 유언호, 김조순

순조 - 이시수, 김재찬, 김이교, 조득영, 남연구 이구, 조만영

문조 - 남공철, 김로, 조병구

헌종 - 이상황, 조인영

철종 - 이헌구, 익평군 이희, 김수근

고종 - 박규수, 신응조, 이돈우, 민영환

순종 - 송근수, 김병시, 이경직, 서정순

내용출처 : 이글은 네이버 오픈백과에서 전문을 발췌 한것임을 밝힙니다.
만일 필자의 의도와 다르다면 즉시 삭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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