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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중에서) 황산대첩(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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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11권 121~132 렬전에서 (황산대첩에서 이태조가 왜장에게 피살될 찰나에 청해백이구함)
왜적의 배 5백 척이 진포(鎭浦) 포구에 들어와서 굵은 바줄로 서로 얽어 매여 놓고 일부 병력으로 그것을 수비하면서 드디어 상륙한 후 분산하여 각 주 군에 들어가서 방화 략탈하였다.

이때 라세와 심덕부 등이 진포에 이르러 화포(火抱)로 그 선박을 불살으니 배를 지키던 적들이 불에 타고 물에 빠져서 거의 전멸되었다. 왜적은 막다른 골목에 빠져서 더욱 발악하여 랍치한 남녀를 모조리 살해해서 시체가 산 같이 쌓였으며 통과하는 곳마다 피바다를 이루었고 자력으로 탈출한 자는 330여 명에 불과하였다.

배를 지키던 왜적 중에서 죽음을 면한 자는 옥주(沃州)로 도망가서 상륙했던 적과 합세하여 리산(利山), 영동(永同) 고을을 불사르고 영동 감무(監務)를 살해하였으며 또 황간(黃澗), 어모(禦侮) 두 고을도 불살랐다. 또 중모(中牟), 화녕(化寧), 공성(功城), 청리(靑利) 등 현들을 침범하였으며 상주(尙州)를 불사르고 그곳에서 7일간 류하면서 술마시고 있었다.

그 때 전라도 원수 지 용기(池勇奇)의 휘하에 있든 배 검(裵儉)이 자진하여 적진으로 가서 정찰할 것을 청하였으므로 여러 원수들이 이를 허락하였다. 배 검이 적진에 도착하니 왜적들이 그를 죽이려 하였으므로 배 검이 말하기를<하늘 밑에는 사신을 죽이는 나라는 없다.

우리 나라 장수들이 정병(精兵)을 무수히 령솔하고 있으니 싸우면 반드시 승전한다. 그러나 너희들을 모조리 점멸한들 무슨 리익이 있겠느냐? 너희들은 어느 고을이나 하나 점령하고 있는 것이 좋겠다>라고 하니 적이 말하기를<이것은 우리를 속이는 것이다.

너희 나라에서 정말로 우리를 살려 주겠으면 왜 우리 배를 빼앗았는가? 우리도 성숙된 계획을 가지고 있다>라고 하고 배 검에게 술을 먹인 후 무장한 기병으로 호송하였다. 왜적은 2∼3세 나는 녀아를 랍치해다가 머리털을 깎고 배를 가른 후 물에 깨끗이 씻어 쌀, 술과 함께 제단에 올려놓고 하늘에 제사하였는데 좌우 편으로 나누워 서서 풍악을 잡히고 절을 하였다.

그리고 제사가 끝 난 후에 그 쌀을 두손으로 움켜서 나누어(○分) 먹고 술을 석 잔씩 마신 다음 그 녀아를 불에 태우는데 갑자기 창(槍)자루가 부러졌다. 이에 점쟁이가 말하기를 <우리들이 이곳에 머물러 있으면 반드시 패전하리라!> 하였으므로 왜적은 즉시 칠병하여 선주(善州)로 달아 났다가 드디어 선주에 불을 놓고 경산부(京山府)로 침입하였다. 이리하여 3도의 연해 주군은 쓸쓸하게 텅 비었으며 왜적의 우한이 시작된 이래로 이같이 심한 적은 없었다.

신 우가 리태조를 양광, 전라, 경상도 도순찰사로 임명하고 변 안렬을 도체찰사로 임명하여 보좌하게 하였으며 왕 복령(王福令), 우 인렬(禹仁烈), 도 길부(都吉敷), 박 림종(朴林宗), 홍인계(洪仁桂), 림 성미(林 成味), 리 태조의 서형 리 원걔(李元桂)를 원수로 임명하여 모두 리 태조의 지휘를 받게 했으며 매 명에 말 2필씩 주었다.

군사들이 출발하여 장단(長湍)에 도착하였을 때에 흰무지개가 해를 관통하였는데 점쟁이는 승전할 징조라고 말했다.
그때 왜적은 사근내역(沙斤乃驛)에 주문하고 있었는데 배 극렴, 김 명휘(金明煇), 지 용기, 오 언(吳彦), 정 지(鄭 地), 박 수 경(朴修敬), 배 언(裵 彦), 도 흥(都興), 하 을지(河乙沚)가 적을 공격했으나 패전하여 박 수경, 배 언이 전사했으며 사졸(士卒)의 전사자가 5백여명에 달하였다. 왜적은 드디어 함양(咸陽)을 도륙하였으며 또 남원 산성(南原山城)을 공격하였으나 함락시키지 못하고 퇴각하여 운봉현(雲峰縣)을 불놓고 인월역(印月驛)에서 주둔하면서 <장차 전라도 김성(金成)에서 말을 먹이고 북으로 진공할 것이다>라고 호언 장담하였으므로 전국이 진감하였다.

리 태조는 들에 널린 시체들을 보고 밤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변 안렬 등과 함께 남원에 도착하니 배 극렴 등이 길로 나와 맞으며 기뻐서 어찌할 줄 몰랐다.

리 태조가 하루 동안 말을 휴식시키고 다음 날 전투하려 하니 모든 장수들이 말하기를<적들이 험한 지형에 의거하고 있으니, 그들이 나오기를 기다려서 싸우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하였으나 태조가 강개에 넘쳐 말하기를<군사를 동원하여 놓으니 복받치는 적개심은 적을 만나지 못할까 염려되었는데 지금 적과 맞다들어서 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고 드디어 여러 장수들의 분담을 결정하고 이른 새벽에 결전을 맹세한 다음 동녘으로 운봉(雲峯)을 넘기 시작하였다.

왜적과 수십 리 거리에 있는 황산(荒山) 서북편에 가서 정산봉(鼎山峯)에 오를 때 리 태조가 도로 우측에 험한 오솔길이 였음을 보고 말하기를 <적이 반드시 이 길로 나와서 아군의 배후를 습격할 것이니 내가 이곳으로 가야겠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다른 장수들은 모두다 평탄한 길로 진격하였는데, 바라보니 적세가 매우 정예하 있으므로 싸우지 않고 퇴군하였다.

그때 날이 이미 가을이었는데 이 태조는 이미 험한 지형에 들어서 있었다. 과연 적의 정예한 기병(奇兵)이 돌격하여 나타났다. 태조는 대우전(大羽箭)으로 20발 쏘고 계속해서 류엽전(柳葉箭)으로 50여 발 쏘았는데, 모두다 적의 면상에 명중하여 시위소리와 함께 넘어졌다. 그리고 전 후 세 번 적을 만나서 력전 끝에 섬멸하였는데 그 장소가 진펄이여서 적아가 모두 빠져서 서로 겹쳐 넘어졌으나 나와 보니 죽는 자는 모두 적병이요 아군은 1명도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

적은 산에 의거하여 방어를 튼튼히 하였고 라 태조는 사졸을 지휘하여 요해(要害) 지점들에 의거하면서 휘하의 장수 리 대중(李大中) 등 10여 명으로 도전케 하고 태조가 쳐 올라가니 적이 죽을 힘을 다하여 돌격하여 나왔으므로 아군은 북으로 달려 산을 내려갔다. 이 때 태조는 돌아 보면서 장병들에게 말하기를 <자갈을 틀어잡고 말이 넘어지지 않게 하라!>고 하였다.
그런 후 리 태조는 소라(螺)를 불게 하고 대오를 정돈하여 개미처럼 붙어 올라 가서 적진으로 돌입하였는데 적장 1명이 창을 들고 바로 태조의 뒤로 덤벼들어서 사태가 매우 위급하였다.

그 때 편장(偏將) 리 두란(李豆蘭)이 말을 달리며 큰 소리로 ≪대감, 뒤를 보오. 대감, 뒤를 보오≫라고 외쳤으며 태조가 미쳐 보기도 전에 리 두란은 활로 쏴서 죽였다.

리 태조는 말에 화살이 명중되여 쓰러졌으므로 다른 말을 갈아 탔다. 또 명중되어 넘어졌으므로 또다시 갈아 탔다. 이번에는 날아 온 화살이 리 태조의 왼쪽 다리에 명중되였으므로 리 태조는 화살을 뽑고 더욱 씩씩하게 더욱 맹렬하게 싸웠으므로 군사들은 리 태조가 부상당한 줄을 몰랐다.

적들이 리 태조를 몇 겹으로 포위하였으나 그는 기마한 몇 명과 함께 포위망을 돌파하고 나오니 적들이 또다시 리 태조의 앞으로 돌격하여 왔으므로 리 태조가 선자리에서 8명을 죽였더니 그제는 적들이 감히 앞으로 나오지 못했다.
리 태조는 하늘의 해를 가리키며 좌우를 휘동하면서 맹세하여 말하기를<비겁한 자는 물러가라! 나는 적을 섬멸하고야 말겠다!>라고 하니 장사들이 감동되여 용기 백배하고 저마다 결사전을 했으나 적들은 심은 나무처럼 버티고 서서 좀처럼 동요하지 않았다.

그때에 나이는 겨우 15∼16세 되고 외모가 단아하며 영용 무쌍한 적장 1명이 나타나서 백마를 타고 창을 두르며 돌격하니 가는 곳마다 삼대처럼 쓰러지며 감히 대전하는 자가 없었다.

아군은 그를 ≪아지 발도≫(阿只拔都)라고 부르며 모두 피해 달아났다. 리 태조는 그의 용예(勇銳)함을 아끼여 리 두란에게 생포하라고 명령하니 리 두란이 말하기를<죽이지 않으면 반드시 사람을 상하게 할것이요. 그리고 그는 견고한 갑옷을 입었고 면상에는 구리 면(面)을 쓰고 있어서 조금도 틈이 없습니다>라고 하니 리 태조는 말하기를<내가 적장의 투구 웃 꼭지를 쏠 터이니 투구가 떨어지면 네가 쏘아라>하고 말을 달려 나가며 쏘니 바로 그 꼭지에 맞아서 투구끈이 끊어지며 한편으로 기울어졌다. 이에 적장은 급히 투구를 바로 잡아 섰으나 즉시로 리 태조가 쏘아서 또다시 투구 꼭지에 명중되어 투구가 드디어 떨어졌다. 그 순간에 리 두란이 쏴서 그를 죽였다.

이렇게 되니 적의 사기가 꺾이였고 태조가 돌진하여 용전하니 적의 정예가 거의 섬멸되었다. 이때 적의 통곡하는 소리가 마치 수천 수만 마리의 소가 우는 듯 하였으며 적들이 말을 버리고 산상으로 올라 갔으므로 아군이 승리한 기세를 놓치지 않고 말을 달려 올라 갈 때 북소리와 고함 소리가 대지를 뒤흔들어 사면이 무너져 내려 앉는 것 같았다.

드디어 대 승리를 거두었는데 내 물이 온통 발갛게 되어 6∼7일동안이나 그 색이 변치 않았으므로 사람들이 그냥은 마시지 못하고 그릇에 담아서 맑아지기를 오래 동안 기다려서야 마실 수 있었다. 로획한 마필(馬匹)이 1600여 필이고 기타 무기는 헤아릴 수 없었다.

지인(知印) 김 국(金鞠)을 파견하여 승전을 보고했더니 신우는 기뻐서 밀직사 인원보(印元寶)를 보내어 궁중에서 술을 주어서 위로하고 김 국에게는 랑장 벼슬과 말 1필을 주었다.

처음에 적의 병력은 아군의 10배나 되었는데 70여 명이 겨우 살아 지이산(智異山)으로 도망쳤다.

이 태조는 말하기를<천하에 적을 한 놈도 남기지 않고 섬멸한 나라는 없다>라고 하고 더는 적을 추격치 않고 퇴군하여서 크게 군악을 치고 광대놀이를 베풀어 주니 장병돌이 모두 다 만세를 부르며 적의 수급(首級)을 산더미 같이 쌓아 올렸다.

다른 장수들은 력전(力戰)치 않은 죄의 추궁을 두려워 하여 머리를 땅에 쪼으며 피를 흘리면서 살려 달라고 애걸하니 리 태조가 말하기를<그것은 조정의 처분에 달린 것이다!>라고 하고 또 말을 이어<적들의 용맹한 놈은 거의 다 없어졌을 것이다>라고 한 후 웃으며 여러 장수들에게 말하기를<적을 치려면 마땅히 이렇게 쳐야 한다!>라고 하였으므로 제장(諸將)이 모두 감복하였다.

그때 납치되었던 자가 적진 가운데서 돌아 와서 말하기를 ≪아지발도가 리 태조의 진세(陣勢)가 정연한 것을 바라보고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이 병세를 보니 지난날의 여러 장수와는 전혀 비할 바가 아니다. 너희들은 각자가 조심하라!>라고 하였다.

그리고 처음에 아지발도는 그 섬(島)에 있으면서 오지 않으려 하였으나 적들이 그의 용예함에 감복하여 굳이 청하여 데려 왔는데 적의 여러 두목들이 매양 그 자 앞에 나아갈 때에는 반드시 바른 걸음으로 나가서 무릎을 꿇고 앉았으며 또 군중(軍中)의 지휘 명령을 모두 장악하고 있었다≫라고 하였다.

이번 행군에 군사들이 장막 기둥을 모두 참대(竹)로 바꾸었는데 리 태조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대는 나무보다 가벼우니 먼 데로 가져 다니기 편리하나 그 참대는 주민들이 심은 것이다. 그리고 내가 장비해 가지고 온 것은 아니니 그저 가지고 온 것을 잃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돌아 가면 족하다≫라고 하였다. 군사들이 감복하여 모두 참대 기둥을 두고 갔다.

리 태조는 가는 곳마다에서 모두 이같이 백성의 재물은 추호도 침범하지 않았다.

동녕(東寧) 전투에서 리 태조는 그 장수 처명(處明)을 생포하여 죽이지 않았더니 처명은 그 은혜를 감명하여 매양 화살 맞은 흔적을 보고는 흐느껴 울었으며 항시 그의 곁에서 시종했는데 이번 전투에서는 처명이 그 말 앞에서 력전하여 공훈을 세웠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이를 칭찬하였다.

리 태조가 개선하니 최 영이 백관을 인솔하고 나가서 채붕(綵棚)을 가설하고 각종 유희를 준비하여 놓고 천수사(天壽寺)문전에서 대렬을 지어 영접하였다. 이때 이 태조가 먼 곳에서 바라보고 하마(下馬)하여 급보로 나가서 재배(再拜)하니 최 영도 재배하고 앞으로 나가 리 태조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그대가 아니면 누구가 이렇게 해낼 수 있겠는가?≫라고 하니 리 태조는 돈수(頓首)하며 사례하여 말하기를≪삼가 당신의 지휘를 받들어 요행히 승전하였소. 나에게 무슨 공이 있겠소. 적세(賊勢)가 이미 좌절되었는데 만약 다시 조량하면 내가 책임을 지겠소≫라고 하였다.

최 영은 말을 계속하여≪공(公)이여! 공이여! 우리 나라의 운명이 이번 전투에 달렸었는데 공이 없었으면 나라는 누구를 믿었겠는가?≫라고 하였으므로 리 태조는 과분한 칭찬이라고 사양했다.
신우는 리 태조와 변 안렬에게 금 50량씩, 왕 복영 이하 여러 장수들에게는 은 50량씩을 상 주었으나 모두 다 사퇴하면서 말하기를≪장수가 적을 격멸하는 것은그 직책인데 우리가 어찌 그것을 받겠는가?≫라고 하였다.

리 태조의 위명(威名)이 더욱 드러났다. 왜적들도 우리 나라 사람들을 포로하면 반드시 리 성계 만호(萬戶)는 지금 어디 있는가고 물었으며 감히 리 태조의 군대에는 접근하지 못하고 반드시 없는 틈을 노리여서 침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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