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Join  Login  
 
별안대(別雁臺)   
작성자   관리자
별안대(別雁臺)

1398년 8월20일 1.2차 왕자들의 란(亂)으로 이 태조는 고향인 함흥본궁(咸興本宮)으로 하야 하고 청해백(靑海伯)은 고향 보청사(甫靑社)[현 서도리(西島里)로 돌아 가셨다.
함흥은 이태조의 출생지는 아니다. 출생지는 영흥군(永興郡)흑석리(黑石里) 이다.
이곳에서 장성하여 함흥으로 이사 제일 높은 운주봉 ( 819 m) 밑 정화촌(定和村)에 집을 짓고 살면서 매일 귀주사(歸州寺)에서 공부를 하였다.

귀주사 앞에는 정화능(定和陵)이 있고 이태조가 살던 집 자리는 일제 시대에는 철망으로 보호했고 귀주사의 태조가 공부하던 자리도 역시 보호하고 있었다.
함흥에는 본궁과 정화능(태조의 선조 능) 그리고 청해 백의 모친 묘소가 있어서 조선 때는 물론 일제 시대에도 영친왕(英親王) 이은(李垠) 이 방자(李方子) 여사와 함께 1년에 한번씩 이능을 참배 하였다.

보청사(甫靑社)는 청해 백의 출생지요 장성 시에 이 태조께서 이곳에 오셔서 함께 뜻이 맞아 활쏘기와 여러 무술을 단련하던 곳으로 청해 백의 고향이다.
이와 같이 각기 고향에 돌아가 살고 있었다.
태종 때에 여러번 사관(使官)을 보내어 시중(侍中)으로 소명(召命)하였으나 서울에 올라오지 아니하고 북청부(北靑府)의 동쪽으로 약 20 리쯤 되는 안곡(安谷)(현 신북청면 신상리(新上里)에 은거(隱居) 별장을 짓고 연못을 파고 기러기를 기르며 산수(山水)와 자연을 사랑하며 여생을 보냈다. 태종의 소명을 거절하고 삭발위승(削髮僞僧)하면서 기르던 기러기를 전부 자유로이 놓아 보냈다. 때문에 후세에 이곳 지명을 별안대(別雁臺)라 불렀고 지금도 그 연못과 그 터가 남아 있다.

북청군지에서 발췌(자유게시판에서 관리자 옮김)



 Prev    이지란(李之蘭)에 대하여
관리자
  2005/11/27 
 Next    경기도박물관 유물
관리자
  2004/04/01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Webzang


  
 
자유게시판 종친회 사진자료실 자료실 행사소식 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