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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장공연구(서병국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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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란, 이화영 부자가 고려말 조선 초기에 무관으로 크게 활약한 이래 후손들은 가계를 이어 대체적으로 무관으로 활약하였으며 나라에 대해 큰 공을 세운 이는 공신의 칭호와 시호를 아울러 받기로 하였는데 이의 으뜸으로 손꼽힐 수 있는 후손은 청해백 8대 손인 이중로(李重老 1577∼1624)일 것이다.

이중로는 조선의 무관으로 자는 진지(鎭之)라 하여 선조(宣祖) 임금 25년(1592)에 약관 16살의 나이로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다음 해에 선전관(宣傳官)에 임명되고 광해군(光海君) 13년(1621) 45살의 나이로 강원도 이천부사(伊川府事)가 되었다.

1623년에 김유(金琉), 이귀(伊貴), 이괄(伊适)등과 함게 인조반정(仁祖反正)에 가담하여 정사 2등 공신(政事二等功臣)이 되고 청흥군(靑興君)에 보해졌다. 같은 해에 도총부 부총관(都總府 副摠官)으로 승진하여 훈련부정(訓練都正)을 겸임하고 그 다음 해에는 벼슬이 올라 강화부윤(江華府尹)이 되었다가 다시 포도대장(捕盜大將)에 오르고 이괄이 반란을 일으키자 경기, 강원, 양도 좌방어사(京畿, 江原, 左方御使)의 직책을 맡아 우방어사 이성부(李聖府)와 함께 황해도 평산(平山)의 예성강(禮成江) 상류 저탄(抵灘)에서 이괄의 반란군을 방어하던 중에 반군의 기습을 받고 전사하였다.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추중(追贈)되어 금천(金川)의 민충사(民衷祠)에서 제향(祭享)하고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선조 임금 10년(1577) : 이인기(李麟奇)의 셋째 아들로 태어남
선조 임금 25년(1592) : 16살의 나이로 무과(武科)에 급제
선조 임금 26년(1593) : 선전관(宣傳官)이 (17살)
광해군 13년(1625)     : 이천부사(伊川府使)가 됨(45살)
광해군 15년(1623)     : 인조반정(仁祖反正)에 가담(47살)
인조임금 1년(1623)   : 정사2등공신(靖社二等功臣)이 되고 청흥(靑興君)에 봉해짐.
인조임금 2년(1624)   : 도총부부총관(都摠府副摠官)에 올라 훈련도정(訓練 都正)을
인조임금 2년(1624)   : 겸임 강화부윤(江華府尹)을 역임(47살)
숙종임금 10년(1684)  : 포도대장(捕盜大將)이 됨. 이괄의 반란으로 경기 강원
숙종임금 12년(1686)  : 양도 좌빙어사(京畿, 江原, 道 左防御使)가 됨(48살)
정조임금 8년(1784)    : 황해도 평산(平山), 예성강(禮成江), 상류 저탄(猪灘)을 방어하다가 이팔의 반군이 기습하여 전사(48)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추중 금천(金川)의 민충사(愍衷社)에서

제향(祭享)충장(忠壯) 이라는 시호를 받음 부인 정시(鄭氏)에게 정문(旌門)을 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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