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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빈 2007/05/15 hit: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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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덕문선생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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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덕문선생추모비
  

지정번호 지정명칭 지정일자 시대 소재지 관리자
제3호 홍덕문선생추모비 1986.4.28 1975  상봉암동 산32-1 동두천시


추모비 : 높이 2m, 폭 0.8m

비 각 : 높이 5.7m, 폭 3.4m

홍병준은 구한말의 애국지사로 자는 덕문(德文),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복영(福永)의 아들로 고종
1년(1864) 10월 1일 걸산동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1919년 음력 2월 25일 동두천 장날 정오에 1천여명의 군중을 인솔하고, 선두에서 독립만세운동
을 지휘하다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갖은 고문과 악형을 당하였다. 그러나 감옥에서도 만세를 연창하
며 백절불굴의 의지를 보였으나 형기를 마치고 돌아온 후 결국 고문과 형독(刑毒)으로 1923년 5월 17일
걸산동 자택에서 타계하였다.

이후 선생의 빛난 얼을 되새겨 의열(義烈)의 감(感)을 후세에 지표로 삼기 위하여 1975년 동두천노인회
주관으로 독립유공자추모회(위원장 김석겸)를 결성하여 시민의 성금을 모아 추모비를 세웠다.
또한 1991년 6월 1일 선생의 고귀한 순국 이념과 숭고한 애국 정신을 기리는 뜻으로 김석겸이 기탁한
성금으로 동두천 애향동지회 주관으로 비각(碑閣)이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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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담당자 : 문화체육과 문화관광담당분야 | 채미정 031-860-2064    

자료최종수정일 : 2007년 01월 01일

자료만족도 :  ★ ★★★ ★★★★★

자료의견수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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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친 여러분들께서 객관적으로 판단해보십시오! 이렇게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 운영되고 있는 유적이 국가에서는 인정을 하려들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조사를 한다고 하면서 그동안 얼마나 많이 요구하며 그 억울한 사연들을 호소하였지만 끝끝내 묵살시켜버렸던 것입니다! 이번 모임에서 이 문제를 심도있게 다루어 주셨으면 합니다!  있을 수 잇는 일인지? 말입니다! 이 분은 본인에게는 대고모부 되시고 증조부의 사위가 되십니다! 아울러 이 분의 독립운동으로 인하여 증조부께서 겪으셔야 했던 그 고통의 세월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조부께서는 그 어린 나이에 남의 집의 데릴사위로 들어가셔야 했으며 증조부께서는 집안을 파하고 객지로 떠돌아다니셔야 했습니다! 결국 강원도 철원 땅에서 돌아가신 그 증조부님을 6,25 전쟁이 끝난후에 강원도 철원에서 선산으로 이장해 오셨다고 합니다! 그것도 모자라 부친께서는 일제 강제 징용으로 끌려가셔야 했으며 사할린(가라후토 :지금은 소련 땅)에서 그 모진 강제노동에 시달리다가 몸이 망가져서 돌아오셨습니다!
그런 역사를 지금 이정부 뿐만아니라 역대 정권들이 착취와 이용만 할 뿐 여태껏 인정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집안의 사위가 그렇게 일본놈들에게 험한 꼴을 당하였는데도 그 어느 누구도 도움을 줄 수 없었던 당시의 그 처절한 사연을 어찌 필설로 다하겠습니까?
시간이 허락하시게 되면 소요산에 한번 들르시게 되면 찾아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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