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이희빈 2007/05/15 hit:1,009
청해이씨시조_청해백이지란영정_20070430162503.jpg (5.4 KB), Download : 30
청해백 이지란 영정 (2)


공민왕(恭愍王) 11년 (서기 1362 년)에

백(伯)이 내간상(內艱喪 : 母親喪事)으로

북청(北靑)에 돌아와 집상(執喪)할새 장사(葬事와 제사(祭祀)를

한결같이 예제(禮制)를 따르고 불법(佛法)을 쓰지 아니하였다.



그때에 원(元)나라의 승상(承相 : (정승))인

납합출(納哈出)이라는 자(者)가 수만병(數萬兵)의 군사(軍士)를

거느리고 쳐들어와 홍원(洪原)의 달단동(撻袒洞)에 둔취(屯聚)하였거늘

공민왕(恭愍王)이 여덟명의 원사(元師)를 보내어

물리치게 하였으나 모두 전패(戰敗)하고 그 중 두명의 원사는

전사(戰死)까지 하였는지라,



다시 이태조(李太祖)를 보내어 물리치게 하므로

태조(太祖)당도(當到)하여 그간의 여러번 패전(敗戰)한

상항(狀況)을 살펴본 후(後)에 백(伯)의 야차(廬次)에 친(親)히 나와

말씀하되 이 도적(盜賊)이 너무 강성(强盛)하여 사직(社稷)이 장차

위태(危殆)롭게 되었으니 군(君)이 다시 기복(起復)적병(賊兵)을

몰아냄이 가(可)하다 함으로 백(伯)이 이에 하늘을

향(向)하여 사배(四拜)하고 절박(切迫)한 사세(事勢)를

축언(祝言)한 후(後)에 외사(外舍)로 나와

상복(喪服)을 갑위(甲胃)로 바꾸어 입고 흐트러진 군졸(軍卒)을 거두어

거느리고 태조(太祖)가 적군(賊軍)을 공격(攻擊)하여

크게 승전(勝戰)하니 납합출(納哈出)이 도망(逃亡)하여

달아나고 동북(東北)쪽의 변방(邊方)이 모두 평정(平定)된지라

태조(太祖)가 칭찬(稱讚)하기를

말 달리고 활쏘아 사냥하는 일은 혹 견줄만한 사람이 있을 것이나

전장(戰場)에 임(臨)하여 적군(賊軍)을 무찌르는데는

아무도 당(當할 자(者)가 없다고 하더라.



그 후(後)에 납씨(納氏)가 사람을 고려(高麗)에 보내어

화친(和親)을 청(請)하는 동시(同時)에

말과 소를 헌납(獻納)하였으며 또 비파((鼓卑)破) 한 개(箇)와

양마(良馬)한 필(匹)을 태조(太祖)에게 보내어 예의(禮意)를 표(表)하니

이것은 대개 필복(必服)한 까닭이이러라.

(용비어천가(龍飛禦天歌)에서)



다음에 계속)

  





미디어다음 기사로 게재되었습니다. 기사보기  


-->

악비장군 제909주년 탄신제
홍덕문선생추모비

Copyright 1999-2017 Zeroboard / skin by chanbi

 
자유게시판 종친회 사진자료실 자료실 행사소식 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