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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해백께서 이성계를 구한기록 2004/04/27 1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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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월과 피바위 전설
고려는 건국 초기에는 국력이 튼튼하였으나 고려말에 이르러서는 승불 정치로 인한 승려들의 발호와 오랫동안 원나라의 간섭으로 국정이 극도로 어수산하였으며 왜구들은 이런 기회를 틈타 공민왕 이래로 갑자기 침략이 잦아져 거의 해마다 해안 지방을 소란케 하더니 이제는 내륙 깊숙히 쳐들어와 장기전을 펴고 때로는 개경의 변두리까지 침입하기에 이르렀다.
1380년(고려 우왕 6) 왜국의 침입으로 남부 내륙을 휩쓸고 지나가자 이성계(李成桂)장군을 삼도 도원수(三道 都元帥)로 삼아 남원부 인월에 주둔한 왜구 토벌의 길에 올랐다.
당시 인월에 진을 친 왜구는 아지발도(阿只拔都)를 괴수로 하는 무리들인데 아지발도는 18세쯤 되고 특히 괴상한 힘이 있는데 다 키가 7척(尺)이 넘었으며, 전신은 철갑으로 무장한 탓으로 활을 맞아도 살을 뚫지 못하니 난군중의 무인지경으로 휩쓸고 다녀 아군에게는 실로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more
3.  고려사(중에서) 황산대첩(발췌) 2004/04/27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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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11권 121~132 렬전에서 (황산대첩에서 이태조가 왜장에게 피살될 찰나에 청해백이구함)
왜적의 배 5백 척이 진포(鎭浦) 포구에 들어와서 굵은 바줄로 서로 얽어 매여 놓고 일부 병력으로 그것을 수비하면서 드디어 상륙한 후 분산하여 각 주 군에 들어가서 방화 략탈하였다.
이때 라세와 심덕부 등이 진포에 이르러 화포(火抱)로 그 선박을 불살으니 배를 지키던 적들이 불에 타고 물에 빠져서 거의 전멸되었다. 왜적은 막다른 골목에 빠져서 더욱 발악하여 랍치한 남녀를 모조리 살해해서 시체가 산 같이 쌓였으며 통과하는 곳마다 피바다를 이루었고 자력으로 탈출한 자는 330여 명에 불과하였다.
배를 지키던 왜적 중에서 죽음을 면한 자는 옥주(沃州)로 도망가서 상륙했던 적과 합세하여 리산(利山), 영동(永同) 고을을 불사르고 영동 감무(監務)를 살해하였으며 또 황간(黃澗), 어모(禦侮) 두 고을도 불살랐다. 또 중모(中牟), 화녕(化寧), 공성(功城), 청리(靑利) 등 현들을 침범하였으며 상주(尙州)를 불사르고 그곳에서 7일간 류하면서 술마시고 있었다.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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