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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황산대첩기념비 2004/04/27 698
소재지 남원시 운봉면
이곳은 高麗末期에 倭寇를 전멸시킨 戰地이다. 日本은 十六世紀末에 壬辰倭亂을 일으켜 七年동안 우리의 강토를 유린하였고, 최근 三十六年間에는 우리의 主權을 강탈하여 민족을 압박 착취한 것은 기억에 생생한 비로서 의분을 참을 수 없거니와 그 以前에도 여러차례 倭寇라하는 海賊團을 조직하고 금수강산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祖國에 침입하여 살인 방화 약탈을 자행하였다 特히 高麗末 四十年間이 더욱 심하였으니 그 중에도 禑王六年(一三八○)八月 鎭浦口 忠南舒川에 침입한 倭寇가 가장 크고 악한자들이었다. 이때 倭船 五白餘雙 이 鎭浦口에 들어와 여러 고을에 흩어져 사람을 죽이고 쌀과 어린이를 배에 실어 감으로 羅世 沈德符 崔茂宣등이 처음으로 崔茂宣이 제조한 大砲를 사용하여 倭船을 다불태워 버리니 배에 있던자는 불에 타서 죽지 아니하면 물에 빠져 죽고 ○地에 올라 온 자는 돌아갈 길이 없게되자 이들은 沃川 利山 永同黃澗 中年, 化寧 功城 靑利 高明 善山등지를 통과하면서 이루는 곳마다 폐허를 만들고 咸陽동쪽 沙斤乃驛에서는 裵克廉등 九元師와 싸워 裵彦 朴修敏등 두 元師와 군인 五百餘名을 죽이고 咸陽을 분당하고 九月에는 雲峯 引月驛에 이르러 장차 光州에서 말을 먹이고 북으로 진격하겠다고 떠드니 倭寇의 피해가 이보다 더 심한 때는 없었으며 中外의 인심은 크게 동요되었다.
이보다 앞서 나라에서는 贊成事 李成桂를 楊廣, 全羅, 慶尙道 都巡察使에 임명하고 王福命, 禹仁烈, 都吉數, 朴林宗, 洪仁桂, 林成味, 李元桂를 元師에 임명하여 이웃을 토벌케했다.
李成桂 邊安烈등 토벌군이 南原에 이르러 적이 引月驛에 있다는 말을 듣고 雲峰을 넘어 荒山 西北쪽 정山峯에 올라가 길 오른편에 험한 지름길이 있는 것을 보고 적이 반드시 이 길로 나와서 我軍의 뒤를 습격하리라고 판단하고 李成桂 自身이 그 길을 담당하고 다른 장수들은 평탄한 길로 나가게하자 과연 적의 정예가 험한 길로 튀어나왔다. 李成桂가 大羽箭과 柳葉箭을 쏘아 선봉의 적을 거의다 사살하자 적장 阿只拔都는 투구와 갑옷으로 전신을 무장하고 白馬를 타고 선봉에서 대항했으나 李成桂와 李豆蘭이 이를 쏘아 죽이니 적진은 무너져 말과 장비를 버리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more
1.  청해이씨(靑海李氏)의 뿌리 2004/03/17 2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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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송통보(皇宋統譜)"에 의하면 시조 지란(之蘭) 두란(豆蘭)은 중국 남송의 충신이며 당대의 명장 악비(岳飛)의 다섯째 아들 정(霆)의 6세손이며, 원나라에서 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을 지낸 아원(雅遠)의 아들 이며 천호를 승습(承襲)하고 여진족의 풍습에 따라 어머니의 성을 따서 동으로 성을 바꾼 후 고려 공민왕 20년 부하를 이끌고 고려에 귀화 북청에 거주하면서 이씨성과 청해를 본관으로 하사받았다.
우리나라의 몇몇 명문가의 시조는 알(卵)에서 태어났다고 신비스럽게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청해이씨의 뿌리에 대하여 문헌상에 밝혀진 것은 300년 전에 우리종중사 최초로 만들어진 족보 경자보(1720) 삼도통제사, 충정공, 휘수민(1724∼1651)(庚子譜 1720, 三道統制使, 忠貞公, 諱壽民)편찬(별첨 39쪽)에 시조 청해백(1331-1442) 쿠룬투란티무르(초명) 퉁두란, 이두란, 이지란, 청해군, 시 양열(始祖 靑海伯 1331-1402 古論豆蘭帖木兒(初名), 豆蘭, 李之蘭, 靑海君, 諡襄烈)의 6대조가 남송(南宋)의 악비(1103-1142), 자붕거, 악왕, 악왕, 무목왕(岳飛 1103-1142 字鵬擧, 岳王, 鄂王, 武穆王)이 비조(鼻祖)로 되어 있고 송사(宋史) (별첨 153쪽)에 의하면 악비 장군의 부(父)는 매우 후덕(厚德)한 분으로 화(和)로 되어 있다. 화 까지의 연대를 따져보면 근 1000년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청해이씨 무후공파보상원보(27쪽), 한국인의 족보, (별첨 126쪽) 청해백, 이지란, 책(별첨 132쪽)경순왕후손 김해김씨 세보상(별첨 240쪽) 청해이씨 병사공파 가첩, (별첨 84쪽)중국 악씨 족보 2권에 악비장군의 5자 정(霆)의 자손에 조선이 거주하고 있다고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별첨 150쪽)
이는 도성(道成) (본명 陽鎬 양덕 출신) 스님이 해인사 주지로 재임시 대만의 악(岳)씨 종친회장과 교류가 되어 중국본토의 악(岳)씨 종친회장과의 교류가 트게되어 수차 면담하여 자료를 제공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당시 연로한 중국의 악(岳)이 종친회장이 도성(道成)스님에게 한국의 청해이씨가 악비장군의 후애라는 것을 상세히 알고 설명하더라는 것이다.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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