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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려사(중에서) 황산대첩(발췌) 2004/04/27 1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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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11권 121~132 렬전에서 (황산대첩에서 이태조가 왜장에게 피살될 찰나에 청해백이구함)
왜적의 배 5백 척이 진포(鎭浦) 포구에 들어와서 굵은 바줄로 서로 얽어 매여 놓고 일부 병력으로 그것을 수비하면서 드디어 상륙한 후 분산하여 각 주 군에 들어가서 방화 략탈하였다.
이때 라세와 심덕부 등이 진포에 이르러 화포(火抱)로 그 선박을 불살으니 배를 지키던 적들이 불에 타고 물에 빠져서 거의 전멸되었다. 왜적은 막다른 골목에 빠져서 더욱 발악하여 랍치한 남녀를 모조리 살해해서 시체가 산 같이 쌓였으며 통과하는 곳마다 피바다를 이루었고 자력으로 탈출한 자는 330여 명에 불과하였다.
배를 지키던 왜적 중에서 죽음을 면한 자는 옥주(沃州)로 도망가서 상륙했던 적과 합세하여 리산(利山), 영동(永同) 고을을 불사르고 영동 감무(監務)를 살해하였으며 또 황간(黃澗), 어모(禦侮) 두 고을도 불살랐다. 또 중모(中牟), 화녕(化寧), 공성(功城), 청리(靑利) 등 현들을 침범하였으며 상주(尙州)를 불사르고 그곳에서 7일간 류하면서 술마시고 있었다. ...more
2.  황산대첩기념비 2004/04/27 875
소재지 남원시 운봉면
이곳은 高麗末期에 倭寇를 전멸시킨 戰地이다. 日本은 十六世紀末에 壬辰倭亂을 일으켜 七年동안 우리의 강토를 유린하였고, 최근 三十六年間에는 우리의 主權을 강탈하여 민족을 압박 착취한 것은 기억에 생생한 비로서 의분을 참을 수 없거니와 그 以前에도 여러차례 倭寇라하는 海賊團을 조직하고 금수강산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祖國에 침입하여 살인 방화 약탈을 자행하였다 特히 高麗末 四十年間이 더욱 심하였으니 그 중에도 禑王六年(一三八○)八月 鎭浦口 忠南舒川에 침입한 倭寇가 가장 크고 악한자들이었다. 이때 倭船 五白餘雙 이 鎭浦口에 들어와 여러 고을에 흩어져 사람을 죽이고 쌀과 어린이를 배에 실어 감으로 羅世 沈德符 崔茂宣등이 처음으로 崔茂宣이 제조한 大砲를 사용하여 倭船을 다불태워 버리니 배에 있던자는 불에 타서 죽지 아니하면 물에 빠져 죽고 ○地에 올라 온 자는 돌아갈 길이 없게되자 이들은 沃川 利山 永同黃澗 中年, 化寧 功城 靑利 高明 善山등지를 통과하면서 이루는 곳마다 폐허를 만들고 咸陽동쪽 沙斤乃驛에서는 裵克廉등 九元師와 싸워 裵彦 朴修敏등 두 元師와 군인 五百餘名을 죽이고 咸陽을 분당하고 九月에는 雲峯 引月驛에 이르러 장차 光州에서 말을 먹이고 북으로 진격하겠다고 떠드니 倭寇의 피해가 이보다 더 심한 때는 없었으며 中外의 인심은 크게 동요되었다.
이보다 앞서 나라에서는 贊成事 李成桂를 楊廣, 全羅, 慶尙道 都巡察使에 임명하고 王福命, 禹仁烈, 都吉數, 朴林宗, 洪仁桂, 林成味, 李元桂를 元師에 임명하여 이웃을 토벌케했다.
李成桂 邊安烈등 토벌군이 南原에 이르러 적이 引月驛에 있다는 말을 듣고 雲峰을 넘어 荒山 西北쪽 정山峯에 올라가 길 오른편에 험한 지름길이 있는 것을 보고 적이 반드시 이 길로 나와서 我軍의 뒤를 습격하리라고 판단하고 李成桂 自身이 그 길을 담당하고 다른 장수들은 평탄한 길로 나가게하자 과연 적의 정예가 험한 길로 튀어나왔다. 李成桂가 大羽箭과 柳葉箭을 쏘아 선봉의 적을 거의다 사살하자 적장 阿只拔都는 투구와 갑옷으로 전신을 무장하고 白馬를 타고 선봉에서 대항했으나 李成桂와 李豆蘭이 이를 쏘아 죽이니 적진은 무너져 말과 장비를 버리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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