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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인물소개 2004/04/27 1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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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조선시대 7명의 문과급제자를 비롯, 많은 관직자를 배출한 청해이씨는 그 대표적인 인물로 이지란의 아들 이화영(李和英)과 병조판서 이유민(李裕民) 등을 들 수 있다.
이화영은 1392년 조선개국에 공을 세워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이 되었으며 1398년 보공대장군(保功大將軍)을 거쳐 상호군(上護軍)이 되었다. 1400년 태종이 즉위하자 예조전서(禮曺典書)에 승진하고 그후 도총제,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 의정부참찬(議政府參贊) 등을 거쳐 판우군부사(判右軍府事)에 이르렀다. 이유민은 1696년 무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승문원에 등용된 후 부만현감, 홍주목사, 충수와 의주의 목사, 수원부사, 함경북도병마절도사 등을 지내고 1721년 형조참판이 되었으며 영조 1년 병조판서로 특진되었다.
훈련대장(訓鍊大將)에 오른 이중로(李重老)는 16세로 무과에 급제하고 선전관(宣傳官)을 거쳐 1621년 이천부사(伊川府使)가 되었다.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청사공신(靑社功臣) 2등이 되고 청흥군(靑興君)에 봉해지고 도총부부총관에 올라 훈련도정(訓鍊都正)을 겸임했다. 그후 포도대장으로 있다가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경기, 강원 양도좌방어사(兩道左防禦使)가 되어 예성강을 방어하다가 전사,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그의 아버지 이인기(李麟奇)는 보은과 영덕의 현감을 지낸 뒤 광해군의 실정을 보고 은거, 1623년 인조반정으로 가평군수가 되고 이괄의 난에 아들 이중로(李重老)가 전사하자 군기사정(軍器寺正),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등에 특진되었으며 1630년 가선대부(嘉善大夫)가 되었다. ...more
9.  용진가 2004/04/27 921
이노래는 1982년 독립군가 보존회에서 발표한 광복의 메아리라고하는 책에 수록된곡이다.
1절 가사 내용 중 시조이신 이지란의 용진법대로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여진을 정벌하신 시조 이지란 장군의 업적을 당시 독립군에서도 잘 알고 있었던듯 하다.
이자료는 무후공파 종손이신 희영님께서 제공하신것이다.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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