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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충장공연구(서병국교수) 2004/04/2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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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란, 이화영 부자가 고려말 조선 초기에 무관으로 크게 활약한 이래 후손들은 가계를 이어 대체적으로 무관으로 활약하였으며 나라에 대해 큰 공을 세운 이는 공신의 칭호와 시호를 아울러 받기로 하였는데 이의 으뜸으로 손꼽힐 수 있는 후손은 청해백 8대 손인 이중로(李重老 1577∼1624)일 것이다.
이중로는 조선의 무관으로 자는 진지(鎭之)라 하여 선조(宣祖) 임금 25년(1592)에 약관 16살의 나이로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다음 해에 선전관(宣傳官)에 임명되고 광해군(光海君) 13년(1621) 45살의 나이로 강원도 이천부사(伊川府事)가 되었다.
1623년에 김유(金琉), 이귀(伊貴), 이괄(伊适)등과 함게 인조반정(仁祖反正)에 가담하여 정사 2등 공신(政事二等功臣)이 되고 청흥군(靑興君)에 보해졌다. 같은 해에 도총부 부총관(都總府 副摠官)으로 승진하여 훈련부정(訓練都正)을 겸임하고 그 다음 해에는 벼슬이 올라 강화부윤(江華府尹)이 되었다가 다시 포도대장(捕盜大將)에 오르고 이괄이 반란을 일으키자 경기, 강원, 양도 좌방어사(京畿, 江原, 左方御使)의 직책을 맡아 우방어사 이성부(李聖府)와 함께 황해도 평산(平山)의 예성강(禮成江) 상류 저탄(抵灘)에서 이괄의 반란군을 방어하던 중에 반군의 기습을 받고 전사하였다.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추중(追贈)되어 금천(金川)의 민충사(民衷祠)에서 제향(祭享)하고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more
5.  무후공연구 (서병국 교수) 2004/04/2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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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후공편 (서병국 교수)(발췌)
이지란의 가계를 가장 잘 계승한 아들은 화영이라고 보아 그의 활약 내용에 대해 살펴보겠다.
화영은 그의 나이 약관의 18살 때부터 벼슬하기 시작하여 랑장(郞將), 사복정(司僕正)등의 벼슬을 거쳐 판좌군도총제부사(判左軍都摠制府事)에 까지 이르렀다.
화영이 가장 크게 활약한 시기는 태종 임금때이었으며, 그는 주로 무관으로 활약하였다.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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